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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의 집, 전경린 (2007)
    예전 포스팅/poem + book 2012. 9. 13. 23:01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그것도 끝까지 다 읽었다. 눈물콧물 빼가면서. 신파도 아니고 새드엔딩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가슴을 콕콕 찌르거나 반대로 등을 슬슬 쓰다듬어주는 느낌의 문장들을 읽을때마다 눈물과 안도감과 웃음이 범벅되었다. 개인적으로 실용서들을 더 선호한지 좀 오래되었고, 그러다보니 소설을 멀리하며 살았는데 이 책을 계기로 당분간 소설에 몰입할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 책도 사놓은지 몇년 되었는데, 사자마자 몇장 읽다가 '와닿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냥 책꽂이에 꽂아만 두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책을 다 읽고도 그 느낌이 날아가지 않게 더 곱씹고 싶어 손에 꼭 쥐고 쓰다듬고 있다니. 전경린 소설은 처음이다. 다른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이 소설이 전작보다 주인공들의 성숙함이 묻어난다고 하는데, 전작을 직접 읽고 비교해보지 않아도 그 말에 수긍이 간다. 호은이 엄마가 되었다가, 호은이가 되었다가, 내 아기의 엄마가 되어, 그리고 훗날 장성한 아들의 엄마가 된 나를 상상하며 읽었다.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그때는 '내 집'을 갖게 되는 운명보다, 비교적 화목한 가정아래 '내 방'을 갖게 되는 꿈을 꾸기로 한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며 사는 삶. 여자로서 말이다.

     

     

     이상하게 이 소설은 영화 <라비앙 로즈>를 생각나게 한다. 어떤 관련성도 찾지 못하겠지만, 책을 덮는 순간 라비앙 로즈의 OST가 떠올라 지금까지 듣고 있다. 가끔 마음이 이끌때면 에디트 삐아프를 들으며 찾아보고 싶어질 소설 속의 몇몇 페이지들.

     

    - 꿈에서 깬 기분이 어때? .... 진짜 자기 집에 도착한 사람처럼, 삶에 대한 모든 부정들이 걷혀. 인간다운 의식주, 생계를 위해 하는 일, 타인과의 교제, 자기 역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방바닥을 닦고 유리창을 닦는 일, 밥을 끓이는 일, 세속적 조건 속에서 살기 위한 온갖 노력들의 경건함을 알게 돼. 그게 포인트야... 단지 세속적인 인간으로 살기 위해 백년의 잠을 자고 깬다고? ... 그냥 세속성과 달라.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이 선택한 삶 속에서 깨어 있는 세속성을 말하는 거야. (p162)

     

    -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의 자를 가지고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없단다. 어디에도 없어. 지금이라면, 난 사랑에 억압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고 기만당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하는 게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네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세상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흘러갔을 거야.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든 혹은 사랑을 지나가버렸든, 사랑이라는 개념 따윈 버리고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믿을 거야. 네 아빠와 난, 그것에 실패했어. (p206)

     

    - 부모가 내게 무슨 짓을 했건, 우린 그것을 원망하기보다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의 운명을 가엾게 여기고 자신의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다. 자기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긍정하며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 알고 보면, 모든 부모는 자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후회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들의 최선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게 아니라 그들의 불가능성과 실패와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시행착오 속에서 잉태되고 출생하고 성장해 부모의 운명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힌 채로 분가하는 것이다. (p218) 

     

    - 세월이 좀 흐르니, 나도 그렇고, 네 아빠도 그렇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산 하나처럼 느껴져. 생각해봐. 산 하나의 내부가 품고 있는 그 많은 생명들과 어찌할 수 없는 인과관계와 진실을. 그게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인 거야. 그러니, 누구도 타인을 구할 만큼 자유로울 수 없어. 제 한 존재를 버티는 일도 참 버거운 거란다. (p254)

     

    - ... 네가 파고들 때마다 엄만 내 가슴이 이렇게 깊은가 하고 놀랐어. 그 연하고 따스하고 포근한 두 팔로 나의 목을 꽉 안고 눈물을 흘리면, 엄만 이상한 감동에 젖곤 했어. 자기에게 화를 내고 때리는 사람을 그토록 깊숙이 끌어안는 존재가 자식 외에 또 있을까... 호은아, 난 그렇게 엄마가 되기 시작했어. 지금도 너를 안을 때마다 난 조금씩 더 큰 엄마가 된단다.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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