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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소비하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체글보기/Days 2022. 2. 18. 11:42

     내년 초등 입학을 앞두고 둘째방을 미리 정리중이다. 터울이 긴 육아 덕분에 뽀로로를 10년 넘게 봐서 스토리를 죄다 알고 있으며, 집에 쌓인 육아책들을 보면 지난 10년간의 육아 베스트셀러의 변천사가 보일 정도이다. 나는 주로 '책육아' 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첫째의 경우 자기전에 책을 매일 읽어주곤 했다. 단행본도 모았지만 전집을 선호했다. 그래서 책들이 넘치고 넘쳐 더이상 둘데가 없게 된게 벌써 몇년되었다. 다행히 첫째는 말을 잘듣는 편이라 읽어주는 책들은 다 좋아했고, 그 시간을 꽤 좋아했다. 둘째는 첫째와 달리 본인의 호불호가 굉장히 명확한 아이이고, 엄마 취향의 명작동화를 읽어주면 영혼없이 쳐다보고 있다가 휭 가버리곤 한다. 그리곤 알아서 스스로 자연관찰책을 꺼내 보다가 읽어달라고 가져온다. 옛날 같았으면 너~ 이런책도 읽어야해~ 이러면서 강제로 다양하게 읽어줬을지 모르겠는데 이젠 그런게 부질없다는걸 깨달은데다, 무엇보다 내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어서 그나마 맞장구만 열심히 쳐주는 쪽이 되었다. 둘째가 좋아하는 책들만 조금 남기고 싹 처분하기로 큰 마음먹은게 지난주. 

     아이를 키우면서 벼룩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걸 많이 해봤는데, 엄마들 카페에선 정말 좋은 것도 완전 싸게 살 수 있는 (원래 그냥 드림 수준인데 기분상 돈을 조금 받는 느낌으로)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경로를 통해 책을 많이 구입했었다. 개똥이네도 많이 이용했었고, 최근엔 둘째까지 봐야하니 그냥 공구를 활용해서 새책을 구입하는 편이었다. 이제는 내가 판매자가 된 입장에서 택배비나 포장에 대한 고민 없이 손쉽게 팔 수 있는 플랫폼, 당근마켓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코로나 핑계로 현관문 거래, 즉 입금을 받고 현관문 앞에 물건을 내놓으면 구매자가 가지고 가는 방식. 좀 저렴히 내놓는 이유에서인지, 또 나름 인기있는 전집들은 정말 바로바로 연락이 온다. 열심히 책을 꺼내 끈으로 묶으며 새삼스레 드는 생각들이 있다.

     전집을 완전히 다 읽어준게, 몇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구쟁이 특공대와 공룡유치원, 고녀석 맛있겠다 같은 미니시리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집 1번부터 마지막번까지 다 읽어준게 '없.다.' 라는 사실. 핑계는 얼마든지 많다. 전업이긴 하지만 완전히 전업은 아닌 엄마, 집에 있긴 하지만 집에서 늘 바쁜 엄마, 저녁만 되면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는 엄마, 애가 그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등등. 시공 네버랜드 260권을 박스에 넣을 때는 자괴감이 들었다. 둘째 신생아 시절 어느 오전, 홈쇼핑에서 홀린듯 버튼을 눌러 무이자로 구입했던 무려 260권의 대전집. 난 뭘 한거지. 더 열심히 마르고 닳도록 읽혔어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올리는 판매글에는 늘 붙어있는 문구, '잘 안읽어서 상태 깨끗해요', '새책이예요', '거의 안봐서 쩍소리 나는 것도 있어요'. 진짜 잘한다 잘해. 귀가 트여야 한다며 영어 DVD도 많이 샀었다. 보여주면 우리집 애들은 다 도망가는 영어 DVD. 비닐도 안뜯은 것들. 그냥 난 이런것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위안을 삼고 있었나보다.

     

    이거말고도 또 한가득...



     모든 과소비는 '불안'이라는 심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불안하지 않았다면 전집을 이렇게 과하게 사들이지 않았을 것 같다 (뭐 전집뿐이랴). 작년 가을만해도, 이제는 국어가 대세라는 말에, 그거봐 역시 결국엔 독서야, 문해력이야, 하면서 또 홀린듯 용선생 시리즈로 쫙! 한국사 전집과 세계사 전집, 과학 전집과 그리고 비룡소 새싹인물전 위인전집(둘째용)을 사들였다. 나는 뭔가 불안하면 책을 산다. 예전에 스튜핏을 외치던 김생민씨는 돈을 모으려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있어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아, 이분은 소비나 저축에 있어서는 정말 찐이구나 싶었다. 본질에 접근해야 변화가 있는 법. 이번에 전집을 대거 정리하면서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사교육 시장에 휘둘리지 않고 괜찮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대신 애들 전집에 많이 휘둘린듯 하다. 어릴 때처럼 계몽사 아저씨가 주기적으로 집에 와서 책 팔던 시절이었다면 맨날 홀라당 넘어갔을듯(우리 엄마도 그랬었을까). 
     
     이제 남은 책들은 주로 둘째가 맨날 꺼내보는 책들 조금, 고학년 위주의 책들, 그리고 저학년 문고 단행본들과 필독서들, 위인전 등이 남게 될 것 같다. 책장 두개를 없애는게 목표이고 둘째방에서도 책이 많이 빠질 것 같다. 집안이 한결 개운해지는 느낌, 어떤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느낌, 남아 있는 책들이 이제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느낌이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 꼭 필요한 것인지? 를 적어도 일주일간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정을 거치는게 중요할 것 같다고 다짐해보지만, 또 좋은책 공구가 뜨면 쳐다보며 고민하고 있을게 뻔하겠지. 그래도 늘 노력해야한다. 지금 있는 책은 다 읽었는지를 먼저 생각하기. 원래 있는 것들을 더 열심히 소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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