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레보비츠, 이름은 그리 익숙지 않지만 그녀가 찍은 사진들은 낯익은 것들이 꽤 있었다. 저 사진도 저분이 찍은거구나! 뭐 이런식. 애니 레보비츠가 카메라와 함께 성장해온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미국 유명인사들과 함께 사진작업을 하는 장면도 나오고, 예전 존 레논/오노 요코와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많지만, 특히 사진을 좋아한다면 꼭 봐줄만한 가치가 있는 다큐멘터리.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그 상황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기 시작하면 비로소 사진을 찍는다는 얘기. 그리고 내가 남기고 싶은 그 순간에 자기자신을 포함해서 기록하는게 좋다는 얘기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구구절절 다 옳은 이야기들. 메모해두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좋은 얘기들이 많았다. 어릴적 떠돌이 생활을 할 때, 자동차의 창문이 이미 카메라의 프레임이었던 그녀의 역사가 참 멋지다는 생각도 들고. 사진이라는게 얼마나 의미 있는 예술인지 새삼 더 느꼈다. 우리네 일상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말이다. 우리의 삶부터, 죽음까지도.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 대한 느낌이라는 점은 많은걸 생각하게 해준다. 사진수업은 아직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85분짜리 근사한 특강하나 수강한 느낌이다. 아주아주 알차고 뿌듯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영화.
+) 예전에 사진유학을 떠난 친한 언니가 예술사진과 상업사진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분은 그런 구분 자체를 무의미하게 여긴다. 내 알팍한 생각으로는, 일단 상업사진으로 돈을 벌고, 그러고나서 예술사진도 찍고. 뭐 그러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ㅋ.
+) 상황에 녹아들어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건 알겠는데, 그렇게 하려면 일단 기술적인 부분이 기본적으로 따라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노출이나 포커스가 맞지 않는 사진도 상황에 따라 충분히 의미있지만, 그런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단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그 시간이 최대한 짧아야 한다는 생각. 그건 정말 기본 중에 기본이란 생각. 근데 난 구도맞추고 초점 맞추고 이리저리 생각하다보면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일단 셔터를 누르고 순발력 연습을 더 하는게 중요하겠지. 스스로를 포함시키라는 얘기에 리모콘 지름신이 살짝 올까말까 했다.
+) 지금의 애니 레보비츠가 되기까지, 그녀의 어머니 역할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예술가에게는 어린시절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어머니께 바친다는 마지막 자막이 인상적이었다. 엄마를 통해 자연스레 카메라를 접한 그녀가 부러웠지만, 한편 나도 그런 멋진 엄마가 되고픈 작은 소망이 생겼다고 할까.
+) 압구정 스폰지에서는 이 영화 상영 전에 짤막한 단편영화를 보여준다. 유지태 감독 <초대>. 난 유지태 좋아하고 그래서 생각지 못한 상영에 반가웠는데... 유지태한테는 좀 미안한데...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얘기, 진짜 그게 어떤 느낌인지 완전 실감했다. 나레이션, 대사 할 것 없이 손발 완전 오그라들었다. 소통의 단절이라... -.-; 그런 나레이션들은.... 여기 좀 가끔 우울해하는 블로거들이 써도 충분한 수준... sorry. 엄지원 이쁘게 나온다. 유지태도 참 안늙는다.